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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기타시

[초월시] 원왕생가 외 초월에 관한 시 모음

 [목차]

원왕생가 / 광덕

추천사 / 서정주

헛것을 기다리며 / 안도현

길에 대하여 / 박현수

고인돌 / 박현수

참새에 대하여 / 박현수 

천하도를 그리다 / 박현수

꽃 / 함민복

경계에 서서 / 제갈덕주

 


 

원왕생가 / 광덕

月下伊底亦

西方念丁去賜里遣

無量壽佛前乃

惱叱古音(鄕言云報言也) 多可支白譴賜立

誓音深史隱尊衣希仰支

兩手集刀花乎白良

願往生願往生

慕人有如自遣賜立

阿邪此身遺也置遣

四十八大願成遣賜去

ᄃᆞᆯ 하 이뎨
西方ᄭᆞ자ᇰ 가샤리고
無量壽佛 前
닏곰다가 ᄉᆞᆲ고샤셔
다딤 기프샨 어ᄒᆡ 울워러
두 손 모도호ᄉᆞᆯᄫᅡ
願往生 願往生
그릴 사ᄅᆞᆷ 잇다 ᄉᆞᆲ고샤셔
아으 이 몸 기텨 두고
四十八大願 일고샬가


추천사 / 서정주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헛것을 기다리며 / 안도현

이제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그 무엇 무엇이 아니라

그 무엇 무엇도 아닌 헛것이라고, 써야겠다

고추잠자리 날아간 바지랑대 끝에 여전히 앉아 있던 고추잠자리와,

툇마루에서 하모니카를 불다가 여치가 된 외삼촌과,

문득 어둔 밤 저수지에 잉어 뛰던 소리와,

우주의 이마를 가시로 긁으며 떨어지던 별똥별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새털구름처럼 밀려오던 자잘한 슬픔들을

내 문법 공책에 이제는 받아 적어야겠다

그동안 나는 헛것을 피해 여기까지 왔다

너의 눈을 재 속에 숨은 숯불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너의 말을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의 귀로 듣지 못하고,

너의 허벅지를 억새밭머리 바람의 혀로 핥지 못하였다

그래 여우라면,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어

혼을 빼고 간을 빼먹는 네가 여우라면 오너라

나는 전등을 들지 않고도 밤길을 걸어

그 허망하다는 시의 나라를 찾아가겠다

너 때문에 뜨거워져 하나도 두렵지 않겠다


길에 대하여 / 박현수

태초에
혼돈을 정리한 것은 길이다
돌도끼를 굴리며
하루 종일 들판에서 헝클어지던
길은 집으로 들고
모든 길은 문지방을 베고 쉬었다
실핏줄처럼
파생되는 길에
길을 잃은 것은 길이다
푸른 들을 가르며
모여드는 길이 두려워
사람들은
나무에 오르고
바다 속에 들기도 하였다
길을
만들고 길을 잊고
길을 묻고
길을 잃는다

집과 무덤까지의
가장 우회한 길이 삶이라면
잃은 길 위에
다시 잃은 길이 시라는 것이다

 


 

고인돌 / 박현수

1

거대한 바위로

상상력을 포석하던 시대를 경배하라

2

신이 사물들 사이로 사라지고

인간의 마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구름도

어제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망막에 비친 사물들은

신으로 가는 통로를 알지 못한다

모든 길은 폐쇠되었다

폭우에 잘려나간 길처럼

다시 끌어올릴 수 없다

마을은 고립되었다

새들도 제 이웃을 잊어버렸다

3

언덕 위엔

무거운 구름이 들어 올려지기 시작하였다

반쯤 땅에 박히고 땅 속에

묻혀버리고

언덕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한때 하늘을 떠다니다가

지상에 가라앉은

거대한 빵들이 공중부양을 시작하였다

등뼈 곧은 꿈들이

지상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개미 떼 위에 떠다니는 장수풍뎅이처럼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지상의 구름은 언덕으로 옮겨지고

그 아래 수많은 욕망의

척추들이 지네발처럼 분주하였다

4

동트는 언덕에

기단부로만 세운 원형의 탑

정결한 식탁에

올린 한 덩이의 솜사탕

거대한 주제일수록

수사학은 가난해지고

오래 다듬을수록 구도는 단순해진다

하늘로 쏘아올린 화살촉은

기도처럼 돌아왔으나

하늘로 오르는 향연의 길은 열렸다

묵직한 단어

몇 개로 건축한

최초의 시가 봉헌되었다

숭고의 문이 세워졌다

초월로 가는 경전이 완성되었다

5

에드벌룬처럼

맛있게 허공에 들린 빵

엄청남 무게의 구름

이것을 공중에 올려놓은 것은

거인이 아니다

심연 속에 유동하는, 피할 수 없는

가는 등뼈들의 욕망이다

키 작은 검은모루동굴 사람들로부터

내려온 은밀한 꿈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

6

저 거대한 바위 아래

미세한 돌촉,

정교한 칼날이 없는 건 아니다

그것들은

거대함 아래 눌려 있다

정교함은 바위의 자세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구성할 수는 없다

세대를 아득하게

이어나간들

영원히 그 자세에 도달할 수 없다

7

허구는 거대할수록

실재한다

무너져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참새에 대하여 / 박현수

이제 참새에 대하여 이야기할 시간이다

떼를 지어 어수선하게 날아다니던 참새들이

둥근 향나무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우르르 솟아오른다

안개가 숲을 지나듯

저녁연기가 탱자울타리를 빠져나가듯

초록 바늘잎에 깃 하나 닿지 않는다

어느 하늘을 다녀온 것일까

참새의 깃털엔 낯선 향기가 묻어 있다

떼를 지어 어느 먼 별자리를

옮겨놓고 돌아오는 길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집들 처마에 새로운 별이 보이는 때도 이 무렵이다

허공에 쌓인 겹겹의 벽을 뚫어

새로운 길을 내고 다니는 참새들이

갈색 옷을 입은 영혼이 아니면 무엇인가

부드러운 안개 입자들,

전자의 궤도를 빠져나가는 휘파람,

뼈를 지닌 에너지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둥근 향나무에 스며드는 참새가 있어

그림자 지닌 것이

모두 슬픈 건 아니라 말할 수 있으니

이제 초월에 대하여 이야기할 시간이다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천하도(天下圖)를 읽다 / 박현수

- 리얼리즘 재론 1

이런 지도 한 장 갖고 싶었네

우리가 다 아는

조선국도 있고, 중국도, 일본국도 있고

우리가 알 만한 유구국, 안남국도 있는 지도

그렇지만

우리가 꿈꾸는 상상의 나라도 그려진 지도

남쪽 바다 안에는

신선이 산다는 봉래, 방장, 영주라는 산이 있고

바다 저 멀리에는

어진 이들이 산다는 군자국이 있고

그 아래엔 여인들만 산다는 여인국도 있는 지도

동쪽 바다 안에는 털 많은 모민국(毛民國)이 있고

서쪽 바다 어딘가에는

한 눈만 있는 사람들의 나라, 일목국(一目國)이 있는 지도

남쪽 바다 한 가운데에는

아무도 죽지 않는 불사국(不死國)이 있고

북쪽 바다 한쪽에는

귀가 긴 사람들의 나라, 섭이국(聶耳國)도 그려진 지도

지상의 삶이란

어디쯤 상상의 세계를 끼고 있는 것임을

넌지시 깨우쳐 주는 지도

우리가 디딘 이 세계가 이미

몽상의 대륙이라는 걸 알려주는 지도

아무도 포착할 수 없었던

꿈의 위도와 경도를 당당하게 타전하는 지도

천하도(天下圖) 속으로

현실도 상상도 모두 망명하여

이 세상, 허전한 이유를 이제 알겠네

 


경계에 서서 / 제갈덕주

 

하늘 가장 가까운 우리집 옥상

붉은 벽돌이 층계 층계 쌓여

네모난 언덕 위에 굴뚝 없는 꼭대기가 있다

석탑처럼 솟은 땅의 경계에 누워

계절 오는 소리를 듣는다

전설을 걸쳐 입은 별자리들이 바람을 밀면

나는 새가슴으로 귀를 내어건다

살갗에 닿은 소리없는 충돌들

아무런 자취가 쌓이지 않고

누구의 추억도 서리지 않은 날개짓을 한다

하늘이 부서지는 아픔을 삼키며

별과 별을 꿰어맨 상상의 바느질을 시도한다

귀를 닫고 눈을 닫고 마음조차 닫으면

하늘이 내려주는 동아줄을 타고 계절이

긴 숨결을 따라 배꼽 아래에 와 닿는다

시간이 바람의 날개짓만큼 날아가고

촉각을 잃어버린 손가락이 심장을

, 찔러오면

별빛은 깜짝 놀라 의식의 경계로 밀려난다

바람이 밤하늘 속으로 숨어 버리고

심장박동이 전깃불처럼 깜박거리면

황홀한 만남은 아쉬움을 새긴다

별빛이 실체를 살짝 내어주며, 아주 잠깐

세계가 멈추어 서는 나의 지붕에는

가끔 그렇게 은하 밖의 소식이 머물다 간다